안녕하세요
열정남입니다.
오늘은 따뜻한 시집 하나 소개해드릴려고 해요.
우리에겐 수녀이자 작가로 유명한 이해인씨의 '작은 기쁨'입니다.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적에 방문했다가
시집 코너에서 작은 기쁨이라는 책을 보게 됐죠.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작은 기쁨'의 시의 전문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최근에 '소소한 습관, 소소한 행복'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던 저로서는
'작은 기쁨'이라는 주제에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먼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 '작은 기쁨' 중에서
시를 읽으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에
이해인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오는 기분이 느껴졌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라고 하는데
글로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시인 이해인씨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시집입니다.
인상 깊은 시 5~6개 정도를 뽑아봤습니다.
읽으시고, 다른 시들도 읽고 싶으시면 서점에 한 번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고백
당신 때문인가요?
딱히 할 말은 업슨데
마구 가슴이 뛰어요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자꾸만 마음이 바빠져요
가시밭길로 보이던 세상이
갑자기 꽃밭으로 보여요
제가 사랑에 빠진 것 맞지요?
작은 기쁨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고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을 부르고
밤에 눈을 감으며
작은 기쁨을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 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준
비단 옷을 차려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
꽃과 나
예쁘다고
예쁘다고
내가 꽃들에게
말을 하는 동안
꽃들은 더 예뻐지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꽃들이 나에게
인사하는 동안
나는 더 착해지고
꽃물이 든 마음으로
환희 웃어보는
우리는
고운 친구
장미 두 송이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보고
가슴이 뛰었다
석류도 익어서
떨어졌는데
오래오래 지지 않는
분홍 장미 두 송이가
빙긋 웃고 있는 뜰
'질 때는 져야지
웬일이니?' 하다가
어느새 정이 들어
지지 않기를 바랐다
마침내 그들이 지는 날
'잘 가, 내년에 만나'
할 수 없이 작별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부재중 응답
방문을 해도
사람이 없다
전화를 해도
부재중 응답이다
갈 곳이 너무 많아도
즐길 것이 너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은 게야
서로가 서로에게
부재중이므로
쓸쓸한 거야
제발
돌아올 시간에
돌아오라고
어딜 자꾸 쏘다니지 말고
제자리에 있어주면
고맙겠다고
누군가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되풀이하는 오늘
내가 아플 때는
1
어느 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
병원에 가니 의사가 말했다
'곧 괜찮아질 겁니다.
다 지나갑니다'
약 한 봉지
먹고 나서
성가신 가려움증을 달래며
내가 나에게 말해준다
'곧 괜찮아질 거야
다 지나간다니까'
그러나
지나가는 것
기다리기 왜 이리 힘든지
순간순간 견뎌내기
왜 이리 지루한지!
2
옆에서 남이 나에게
아무리 아픔을 호소해도
심각하게 듣진 않았지
그냥 자 참으라고만 했지
내가 조금 아프니
남에겐 관심 없고
오직 내 아픔만
세상의 중심이네
남에게 잘 참으라고
가볍게 했던 말
내 방식대로 훈계한 말
부끄러워 숨고 싶네
많이 아픈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나의 조그만 아픔들이
이리 크게 다가올 줄이야
이리 크게 부끄러울 줄이야
엄마
누가 종이에
'엄마'라고 쓴
낙서만 보아도
그냥 좋다
내 엄마가 생각난다
누가 큰 소리로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그냥 좋다
그의 엄마가
내 엄마 같다
엄마 없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플 때
제일 먼저 불러보는 엄마
엄마를 부르면
일단 살 것 같다
엄마는
병을 고치는 의사
어디서나
미움도 사랑으로
바꾸어놓는 요술 천사
자꾸자꾸 그리워해도
그리움이 남아 있는
나의
우리의 영원한 애인
엄마
어느 노인의 편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들
그리고 나를 돌보아주는
친절한 친구들이시여
나를 마다 않고 살펴주는 정성
나는 늘 고맙게 생각해요
허지만 그대들이 나를
자꾸만 치매노인 취급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교육시키려 할 적마다
마음 한구석에선
꼭 그런 것은 아닌데...
그냥 조금 기억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없어진 것뿐인데...
하고 속으로 중얼거려본다오
제발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나를 갓난아기 취급하는
언행은 좀 안 했으면 합니다.
아직은 귀가 밝아 다 듣고 있는데
공적으로 망신을 줄 적엔
정말 울고 싶답니다
그리고 물론
악의 없는 질문임을 나도 알지만
생에 대한 집착이 있는지 없는지
은근슬쩍 떠보는 듯한 그런 질문은
삼가주면 좋겠구려
어려운 시험을 당하는 것 같아
내 맘이 편칠 않으니...
어차피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하고 떠나갈 나에게
떠날 준비는 되어 있느냐
아직도 살고 싶으냐
빙빙 둘려 물어본다면
내가 무어라고 답을 하면 좋을지
더 살고 싶다고 하면
욕심 많은 늙은이라 할 테고
어서 죽고 싶다면
우울하고 궁상맞은 푸념쟁이라 할 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나의 숨은 비애를
살짝 감추고 사는 지혜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여
내가 가끔은 그대들이 원치 않는
이기적인 추한 모습
생에 집착하는 모습 보일지라도
아주 조금만 용서를 받고 싶은 마음이지요
하늘이 준
복고 수를 다 누리라 축원하고
오래 살라 덕담하면
좋다고 고맙다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나도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가능하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평온한 죽음을 맞게 해달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음을 알아달라고
오늘은 내 입으로
꼭 한 번 말하고 싶었다오
그러니 부디 지상에서의
나의 떠남을 너무 재촉하지는 말고
좀 더 기다려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나를 짐이 아닌 축복으로
여겨달란 말은 안할 테니
시간 속의 섭리에 맡겨두고
조금 더 인내해달라 부탁하고 싶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빚진
사랑의 의무를 실천하는 뜻으로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어설픈 편지라도 쓸 수 있으니
쓸쓸한 중에도 행복하네요
어쨌든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나의 처지에
오늘도 미안한 마음 감출 수가 없지만
아직은 이렇게 살아 있음이
그래도 행복해서
가만히 혼자 웃어봅니다
이 웃음을 또 치매라고 하진 않을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웃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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