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
인문학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9월 30일, 경희대학교에서 열린 인문학 강연에서 인문학이 추구하는 기본 가치를 찾아,
김상근 교수는 <인문학으로 창조하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마키아벨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外 다수를 집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재)플라톤 아카데미 본부장을 지내고 있습니다.
김상근 교수는 강연에서 현재 인문학 열풍 속에서 인문학이 지나치게 '힐링의 도구'로 전락해,
인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놓칠 것에 대해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근대 이후 대학은 '인문학적 수학 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오늘날의 대학에서는 학문의 핵심을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적 성찰, 즉 자기성찰에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문학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과연 인문학이 '힐링'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비판적 성찰을 위한 것일까?
인문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는
먼저 인문학이 어떻게 출발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초의 인문학은 '후마니타스(Humanitas, 인간다움)' 개념을 만들었던 키케로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시인 아르키아스를 변호하면서 '후마니타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 때 '후마니타스'는 힐링이나 비판적 성찰과는 거리가 먼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인물들은 탁월함(Virtus, Arete)을 습득하고 훈련하기 위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런 공부는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역경속에 처해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 키케로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한 변론>中에서 발췌(BC62)
키케로의 '후마니티스'의 개념을 의미하는 인문학은 인간다움은 바로 탁월함을 습득하고 훈련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중세시대의 대학의 모습(7개 학부로 구성)>
- 3학과(논리, 수사학, 문법)과 4학과(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
중세 재학의 교과과정은 자유로운 인간을 위한 학문인 '자유학예'였고,
학문을 다루던 대학원은 신학, 법학, 의학이 주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세분화, 이론화되어, 중세시대의 학문은 매우 현학적으로 현실세계와 동떨어져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피렌체에서 상공인 계급이 등장하면서 학문적 요구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대학의 학문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실제 생활과 사업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학문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따라 '스튜디아 후마니타스(Studia Humanitatis, 인간에 대한 학문)'이 탄생했습니다.
메디치가의 인문학자 니콜로 니콜리는
"페트라트카가 지금까지 소멸되어 왔던 스튜디아 후마니타스를 부활시켰다"고 말했습니다.
즉, 피렌체에서 탄생한 인문학은 '힐링'이나 '비판적 체계'가 아닌 '탁월함'을 추구했으며,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은 피렌체 지식인들이 실생활에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본격적으로 인문학이 태동하였습니다.
특히, 메디치 가문의 리더 '코시모 데 미디치'가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대학이 아닌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했고, 바로 이 곳에서 인문학이 처음 출발합니다.
△ 요분이 바로 메디치가의 총수 코시모 데 메디치 (이미지 출처:네이버 캐스트)
'탁월함의 추구'(그리스어로 Arete, 아르테)을 통해
바른 마음과 행복을 찾는 것이 바로 인문학의 처음 출발할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인문학이 추구하는 세 가지 질문]
김상근 교수는 인문학의 기본가치를 진선미(眞善美)로 해석하였는데,
진(眞)(Verum) 선(善)(Bonum) 미(美)(Pulchrum) | Who am I? → 내면의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것 How to Live? → 합리적인 사고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 Live Creatively & Die Gracefully → 탁월함의 추구(아르테)로 창조적인 삶을 살고, 멋지게 죽는 것 |
이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요소가
나중에 다시 "나는 누구인가?"와 연결될 때,
우리는 창조적인 삶을 살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김상근 교수는 이 세가지 질문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인문학이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키루스 대왕, 페리클레스, 카스트루초 이 세사람의 삶을 통해 인문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크세노폰 作 <키루스의 교육>
크세노폰은 세기에 만들어진 서양의 리더십에 대한 교본인 '군주의 거울(Mirrors for Princes)'을 대표하는
<키루스의 교육>을 집필했습니다.
군주의 거울은 지도자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듯 끊임없이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크세노폰은 <키루스의 교육>에서 '키루스'라는 인물을 통해 '리더의 덕목'을 제시합니다.
페르시아 건국황제인 '키루스'는 메데아와의 최후의 격전을 앞두고 공포에 질려있는
페르시아 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했습니다.
"나는 승자에게 주어지는 상을 얻기 위해서는
적을 추격하고, 타격하고, 죽여야 한다는 것을 그대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승자는 모든 좋은 것을 차지하고 , 고귀한 말을 듣게되며, 자유민이 되고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패자는 그 반대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나와 같이 싸웁시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기자신을 제일 아끼는 사람을 '필라우토스(philautos)'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창피한 말로 낮춰 부른다.
열등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행동하는 뜻이며 못된 인간일수록 이기적인 것 같다.
반대로 훌륭한 사람은 고귀함을 이유로 모든 것을 행하며, 친구를 위하여 행하고 자기자신의 것을 미루어 놓는다.
따라서 일반적인 '자기애'는 열등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토스 윤리학> 제9권 제8장 -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사람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 남들보다 앞서려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훌륭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올바른 일을 하는 것, 정제하는 것, 그리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에서 남들보다 앞서려고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선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키루스'가 주는 교훈은 바로 '자기자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싸워서 최후의 승리자가 되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나아가 '올바른 일을 하는 것, 절제하는 것,
그리고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에서 남들보다 앞서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투퀴디데스 作 <필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그는 페리클레스(BC495-428)의 생애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모든 사람이 전쟁을 반대할 때, 전쟁을 하자고 주장했는데,
그가 전쟁을 반대하는 아테네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1)식견, (2)본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즉 커뮤니케이션 스킬, (3)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4)돈에 초연함
을 갖춘 지도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명석한과 판단력을 겸비한 실력자이자 청렴결백으로 유명했기에
대중에게 좌지우지 당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마음을 이끌 수 있었으며,
미래를 향해 나가야한다고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마키아벨리 作 <카스트루초의 생애>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과 상반되는 깊은 참회를 담은 책<Life of Castruccio Castracan>에서
13세기 루카의 용병대장 '카스트루초'의 생애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는 군주가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그 후 <군주론>의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그는 <Life of Castruccio Castracan>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선 카스트루초의 생애를 살펴보겠습니다.
포도원에 버려진 카스트루초를 안토니오가 데려와 키웠는데,
뛰어난 리더쉽을 지닌 18살 카스트루초를 프란체스코가 보고 그를 자신의 아들로 입양합니다.
그리고 카스트루초는 프란체스코가 죽으면서 부탁한 그의 아들 '파골로 귀니지'를 양아들로 삼습니다.
카스트루초는 황제파와 교황파가 대립하며 극한 갈등상황을 겪으며, 이에 따라 도시도 양분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
[황제파(기벨린당)] → 피사, 밀라노, 루카, 독일 VS [교황파(구엘프당)] → 피렌체, 나폴리, 로마
카스트루초는 여우의 지혜를 통해 수많은 전쟁과 반란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결국 과거의 황제파에 속했던 카스트루초는 적군인 교황파 로마의 원로원이 됩니다.
(그의 전쟁같은 생애를 설명하자면, 세계사 시간이 되는 관계로~ 여기서는 생략!
궁금하면 네이버에세 물어보세요!)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카스트루초는 고국으로 돌아가 승리의 열병식을 앞두고 감기에 걸려 어의없게, 갑자기 죽게됩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는 왜 <군주론>의 핵심을 따르는 카스트루초의 생애를 글로 썼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카스트루초의 유언 때문입니다.
카스트루초는 죽기 직전, 자신의 아들 파골로 귀니지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그 유언은 바로 마키아벨리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나는 용기를 가지고 포르투나를 제압하려고 했다. 나는 양자인 널 보호하기 위해 결혼까지 포기했다.
내가 아들을 가지면 자연히 너와 멀어질까 두려웠다.
나는 맨손으로 루카를 차지했고, 피사와 피스토피아도 정복했고, 네가 물려줄 만큼 비르투스의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나는 큰나라를 너에게 물려주지만, 큰 슬픔이 밀려온다.
여전히 루카의 정세는 불안정하고 우리의 전쟁상대였던 피렌체는 막강한 자본력을 중심으로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너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카르트루초가 아들 파골로에게 남긴 유언 中-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카르트루초의 생애, 그러나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피사, 루카, 피스토이아를 차지했던 그였지만, 그것이 그에게 있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힘과 너의 나라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네가 전쟁을 치르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면, 너는 평화의 방법으로 나라를 다스려라."
- 카르트루초가 아들 파골로에게 남긴 유언 中-
결국, 마키아벨리가 카르트루초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바로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자기성찰을 통해 스스로의 한꼐와 가능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Who am I? - 나는 누구인가?
김상근 교수는 이 세 명의 지도자를 통해
자기자신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먼 미래를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의 지배를 받는 인간임을 기억하고,
자기성찰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야만 우리는 인문학적인 삶, 탁월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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