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7일 오전.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랩톱과 스마트폰의 중간쯤 되는 엄청난 제품'인 아이패드에 대해 예고했다. 그가 "제품 출시일은 3월 31일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출시가 두 달도 넘게 남은 아이패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핫'한 상품이 되었다. 공식 출시일부터 12일 앞서 선주문 접수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판매사이트 서버는 금세 마비됐다. 아직 눈으로 보지도 못한 제품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499달러를 기꺼이 지불했다. 경매 사이트에선 원래 가격의 10배까지 입찰가가 치솟았다.
애플은 사람들의 기대감을 가장 잘 고취시키는 회사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하면서도 출시가 한참 남은 제품에 대해 아주 약간의 정보만 흘린다. 그 결과, 애플 팬들은 목을 빼고 기다리게 된다. 팬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요물 같은 전략은 아이패드뿐만 아니라 아이폰 때도 적중했다.
재미난 점은 고객들 반응이다. 제품을 손에 넣기 전에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 출시 전에는 신제품을 확보하려고 아우성이지만 제품 출시 직후엔 서서히 열기가 식는다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나중에 손에 쥔 제품이 자신이 원하던 완벽한 제품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또다시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기다리는 '기대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앞으로 나올 신제품에 대한 기대로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
마이클 달렌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현재 가지고 있는 제품보다 앞으로 가질 수 있는 제품에 열광한다"며 "이제 마케팅의 핵심은 앞으로 출시된 제품에 대한 기대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은 달렌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현대 사회를 '기대 사회(expectation society)'로 정의했다. 기대 사회란 어떤 것인가. ▶현재 가진 것보단 내일 가질 행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사회다. 막상 원하던 물건을 손에 쥐게 되더라도 가지지 못한 다음 행복에 또다시 눈을 돌린다. 이건 결혼이랑 비슷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날짜를 잡고 신혼 생활을 상상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결혼에 골인해 막상 현실이 되면 기대만 못하다고 털어놓는 사람도 많다. 결혼의 만족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낮아진다.
제품 구매도 결혼이나 데이트와 다를 게 없다. 영리한 기업들은 기대감의 힘을 알고 이를 이용해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제품도 예고편을 만들고 선주문을 받는다.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선주문할 때의 행복은 직접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행복보다 훨씬 크다.
-애플 말고도 기대감을 잘 활용하는 기업은 어디인가. ▶구글도 애플과 마찬가지로 고객들의 기대감을 잘 조절하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 '구글 글라스'를 생각해보라. 기술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다. 그런데도 구글은 구글 글라스를 계속 개발자 회의에서 보여줘 선전한다. 숱한 뉴스를 내보내면서 이미 출시한 제품인 것처럼 기대감을 고취시켰다. 페이스북도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마다 항상 미리 예고하고 있다. 삼성전자ㆍ일렉트로룩스 같은 전자기업들도 선주문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제품보다 미래 제품을 기다릴 때 만족감이 훨씬 크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미래 나올 제품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 아닌가. ▶그렇다. 탁월한 신제품이 예고된 상황에선 현재 소비가 움츠러들 수 있다. 그렇기에 '베스트바이' 같은 유통업체는 아예 신제품이 나오는 즉시 교환해 준다는 보증 제도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신제품을 기다리면서 계속 구매를 미룰 테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제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개선을 하고 있다. '미래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행복할 수 있지만 기업들은 더 고생스러워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기업들이 이익을 늘릴 방법이 있는가. ▶기업들은 우선 제품 수명 사이클 자체가 과거에 비해 매우 짧아졌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부터 차기작을 준비해서 제품에 대한 기대감을 연장시켜야 한다.
그리고 선주문은 이제 마케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가전이나 자동차 영화 같은 산업군을 봐라. 선주문을 안 받는 곳이 이제 거의 없다. 예고편을 보고 소문만으로 선주문을 넣을 때가 제품의 몸값이 제일 높을 때다.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가 앨범 '인 레인보우스'를 발표하면서 방문자들이 직접 원하는 만큼 가격을 정해 음악을 내려받도록 했다. 출시 전에 팬들이 미리 지불한 금액은 평균 8달러였는데 앨범이 나온 당일엔 5달러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기대의 중요성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스펙보다 가치가 있다. 차기작을 절대 비밀로 하지 말고 조금씩 정보를 흘려서 기대감을 쌓아라. 그보다 더 흥분되는 건 없다.
-애플이나 구글은 워낙 혁신적인 제품을 내놨기 때문에 기대 형성에 의미가 있었다. 평범한 제품도 미래를 팔고 기대를 형성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미국 기술 분야 업체 중 자사 제품의 출시를 사전 예고한 기업의 시장가치를 관찰해봤다. 시장 평균 수익률을 상회하는 연간 초과수익률이 평균 14%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오지도 않은 제품을 언급하는 것 자체만으로 해당 기업의 가치는 높아진다. 제품 출시 예고는 그 제품이 실제로 출시됐는지, 실제 실적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해당 기업의 가치를 급등하게 만든다.
제품이 아니라 기업의 미래를 파는 것도 의미가 있다. 기업의 현재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미래에 어떤 것을 할지, 어떤 기업이 될지를 보여주는 것이 미래를 파는 광고라 할 수 있다. 슈퍼볼 광고에서도 제품에 초점을 맞춘 경우보다 기업의 미래를 언급한 광고가 나중에 주가가 더 많이 오른다.
-제품 주기는 짧아졌다. 그렇다면 신제품 출시 속도를 더 높여야 할까. ▶신제품을 더 자주 내놓는 것은 현대 비즈니스 게임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러나 무조건 신제품 공세를 펼치기보다는 제품을 출시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둬서 사람들의 열망을 높이는 게 낫다. 출시 후 제품 수명 주기를 늘리는 게 아니라 출시 전 수명을 늘려야 한다.
애플은 삼성전자 같은 경쟁사에 비해 신제품을 자주 내놓는 곳은 아니다. 애플 전략은 미래에 닿기까지의 시간을 늘려 계속 사람들 관심을 붙들어 두는 것이다. 가령 아이패드를 출시하자마자 아이폰4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식이다. 아이패드에 대한 호감이 식기 시작하는 타이밍에 또 다른 기대감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제품에 대한 인기를 높인다. 소비자들은 출시 후 극히 짧은 순간 동안에만 만족도를 누리더라도 높은 가격을 지불하려 할 것이다.
-예고편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 영화는 예고편이 흥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처럼 신제품을 내놓을 때도 실제 출시 후 마케팅보다 제품 예고나 티저 영상 같은 예고편이 더 중요하다.
2007년 블록버스터 '심슨가족'은 예고편이 본편보다 더 인기가 많았던 사례일 것이다. 예고편 유튜브 클립 수가 500개, 클립당 조회 수도 200만건이나 됐다.
사람들은 예고편을 보는 것처럼 어떤 사실에 대해 더 많이 공상할수록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일부는 이러한 행복감을 계속 느끼기 위해 아예 상상한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꿈이 현실이 돼 실망할까 겁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고편보다 본편이 못하면 그게 부메랑이 되는 게 아닌가. 화려한 예고편은 오히려 본편에 대한 만족도를 더 낮출 수 있다.
▶물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겁이나 기대감 쌓기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높은 기대감 없이는 아무도 당신 제품에 신경 써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제품이 예고편으로 관심 끌기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고편을 충분히 풀어 적어도 소비자가 한 번 체크해 볼 기회는 줘야 한다. '소극적으로 파는 것(underselling)'이 '과장해서 파는 것(overselling)'보다 더 나쁘다.
-예고편을 공개하는 건 좋지만 경쟁사에 중요 정보가 노출되면 어떻게 하나. 보안은 지켜져야 하는 게 아닌가. ▶예고편에선 당연히 일부만 노출해야 한다. 보안 때문이 아니다. 효과적인 기대감 형성을 위해서는 고객을 애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추측을 키울 정도만 살짝 정보를 흘려라. 애플이 항상 '원 모어 싱(one more thing)'을 남겨 놓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 대강 어떤 게 나올지는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소비자들의 제품 만족도가 물건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떨어진다면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해야 할까. ▶사후 서비스도 업그레이드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새로움과 흥미를 제품에 더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제품에 대한 기대가 꺾이게 내버려두면 안된다. ■ Who he is … 마이클 달렌 교수는 스톡홀름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마케팅과 소비자 행동학을 가르치고 있다. 진화생물학, 사회심리학, 경제학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연구들을 종합해 '넥스토피아(Nextopia)'라는 책을 출간했다. 넥스토피아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 행복한 사회를 말한다. 34세에 스톡홀름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후 스스로를 '록스타 교수'로 칭하며 항상 파격적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상품을 판매하다보면,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집중하기보다는 상품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상품 기획자는 마치 갑질이라도 하는 것마냥, 상품의 품질이, 기능이, 디자인이 좋으면 언제든지 고객들이 알아서 구매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 오류는 자연스럽게 상품의 매출 부진으로 이어지게 되고, 냉혹한 시장 세계는 이런 상품을 경쟁사들에게 모방을 당하게 하거나, 대 자본에 흡수하게 만들도록 놔둔다.
상품 기획자는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제품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품을 구매하는 구매자들의 심리이다. 이 글에서도 나와 있듯이,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하고나서 그 제품을 사용하기 전, 자신이 그 제품을 이용하면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최대의 효용을 경험한다. 이러한 기대감의 행태가 하나 둘 씩 경험으로 쌓이면서 유사 제품이나 특정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생기게 마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심리가 반영되어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지폐'는 사실 종이 조각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종이에 값을 부여하고, 그 값에 따라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용역을 이용한다. 나라마다 통용하는 '화폐 가치'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단순히 화폐에 적혀있는 0의 숫자에 따라서 우리는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상상한다. 그 화폐의 가격이 정해주는 범위 안에서 우리는 그 값으로 지불하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기대한다. 그 때 느끼는 기대감과 실제 구매를 통해서 얻은 상품이나 용역이 동일하거나 그 이상일 때 우리는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상품기획자는 상품을 판매함에 앞서서 상품을 통해서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기대감에 많은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행동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과 관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