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한 노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오베라는 남자.
5인실, 한 병동에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다.
우연일까, 오늘 본 영화도 한 노인의 이야기이다.
오베라는 남자.
베스트셀러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인데 책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장르는 내가 좋아하는 가족 영화이다.
고집이 아주 세고, 보수적인, 흔히 말하는 꼰대 영감의 표본인 오베.
그는 도대체 왜 이렇게 고집불통 할아버지가 되었을까.
공동체 생활을 하지만, 이웃집들에게는 절대 친절함을 베풀지 않는다.
심지어 길고양이에게도 핀잔을 주기 일쑤.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못마땅한 이 영감의 이야기, 처음부터 호기심이 생긴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많이 느낀다.
나를 제외한 네 분의 어르신들이 있는데, 다행히 네 분다 아내가 있으시다.
어느 아내는 매일 아침, 저녁 조용히 간병을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함도 베푸시고, 먹을 것을 싸오면 나눠 드시기도 하고, 청소도 도와주신다.
어느 아내는 하루 종일 한 번도 들리지 않거나, 전화로만 대화를 나눌 뿐이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자녀들은 역시나, 병에 걸린 늙은 아버지를 병문안하지도 않는다.
함께 살아온 인연이 있지만, 사람마다 그 인연의 절대적인 시간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그 깊이가 달랐을 터인지라, 병원에서도 그들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속 주인공 오베는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 보내고, 무덤덤한 인생을 보내다가 정년 퇴직을 하게 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직장인지라, 무료함과 함께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자살을 택하지만, 그 자살은 종종 실패하게 된다. 바로 이웃들 때문이다.
그의 자살 시도를 막는 이웃들이 너무나도 성가시기 때문에 오베는 모든 것들을 다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자신 내면 깊숙이 죽고자 하는 욕망 보다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홀로 지내왔던 그였던 터라, 함께 하고 싶은 욕구, 소속에 대한 욕구가 컸을 터.
고집쟁이 오베는 점점 변화한다.
이 영화는 참 감동적이다.
한결같이 아름답고 착하고, 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선생님인 오베의 아내 소냐와 그녀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오베의 러브스토리는 순수하기 그지 없다. 돈도 한 푼 없는 오베를 믿고 교육의 힘으로 오베를 직업을 갖게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 그 둘의 사랑은 어떤 장애물도 다 헤쳐나갈 수 있었다. 불의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하지만 사고 이후에도 둘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서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서 많은 선의를 이끌었다. 비록 암으로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는 오베는 공허한 마음에 자신이 이뤄낸 모든 것들을 포기하려고 했으나,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와 관심으로 결국 위대한 것들을 이뤄낸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이 영화는 공동체의 위대함을 표현한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들은 비록 울타리는 없지만, 단단한 콘크리트로 쌓아둔 벽에 서로를 고립시키며 살아왔다. 수십년동안 서로간의 단절에 익숙해서인지, 아파트 복도에서 서로를 만나도 인사하는 것이 너무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어색해서 인사를 한 번 피했다가는 영영 못할 기세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나도, 서로 인사하는 법 없이 우리는 서로를 무시하게 되다가, 층간 소음, 아파트간 이기주의로 인해서 충돌이 발생하거나 서로를 폄하하거나 다툼이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감독은 이러한 모습에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
우리네 아파트의 경비원들의 힘은 없다. 몇 년 사이에 경비원들의 인권 침해 사례는 무수히 많아지고 있다. 특히나 고소득층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경우, 경비원들의 인권 침해는 극심하다. 욕설이나 폭행은 물론, 협박까지 당하는 경우가 발생해 경비원들의 자살 사례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영화 속 주인공 오베는 이 지역의 주민 대표를 하다가 떨어진 주민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순찰을 하면서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한다. 지역 주민들이 선출한 것은 아니지만, 오베는 자기 스스로 이 지역 공동체의 경비원이자 보안관 역할을 한다. 어떤 금전적 보상 없이.
이것 저것 규칙에 어긋난 행동들을 하는 주민들에게 오베는 큰소리를 치기 일쑤다. 이런 모습에 주민들은 노망난 할아버지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피하지만, 오베의 행동에는 나쁜 의도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보안관과 경비원과 같은 오베의 존재감만으로도 지역 사회가 튼튼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오베를 존경한다.
오베의 이런 행동은 외로운 자신의 모습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아가는 당당한 한 노인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표출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오베에게 있어서 새로 이사온 이웃집 이란계 주민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앞 뒤 물불 안가리고 오베에게 이것 저것 부탁하는 당돌함에 오베는 큰소리를 치다가도 알게 모르게 주민의 요청을 들어주게 된다. 이란계 여 주민 또한 그러지 않으면 오베는 결국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이란계 여 주민은 어느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벽을 치고 살았던 오베와 어느새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여 주민을 비롯한 가족들과 오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행복한 여생을 마감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서구 사회에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란계 여 주민이 한 말 중에서는 '인간은 절대 혼사서 살 수 없다.'라는 것이 있는데, 공감이 가는 말이다.
건강한 우리들의 눈에서 봤을 때는 거동이 불편하고, 백발의 주름이 깊게 패인 어르신들은 어떤 존재일까. 외적으로 봤을 때는 우리들에 비해서는 건강한 것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노인 한 분이 오랜 세월 경험한 인생의 노하우 속에서는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면 요양원에서 따로 살아야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웃 주민들이 관심과 배려를 가지고 함께 발전해나가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우리네 아버지이자, 선생님이자, 훈장님이자, 든든한 형제와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병원에서 눈물을 숨기며 본 영화 오베라는 남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입가에는 훈훈한 미소를 짓는 오베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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