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
이 영화는 예고편부터가 압권이다.
무표정의 제이크 질렌할이 온 집을 다 떼려부수는,
영화 제목 데몰리션이 딱 어울리는 장면이다.
도대체 뭐 때문에 주인공은 이렇게 자신이 살아온 집을 이렇게 작정하고 무너뜨릴까?
이런 궁금증으로 시작된 이 영화, 데몰리션.
너무 차분해서 밋밋하게 느껴지기까지도 한 이 영화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다.
기쁠 때 제대로 기뻐할 지 모르고,
슬플 때 제대로 슬퍼할 지 모르는,
가면을 쓴 현대인들의 무감각을 표현한 영화가 아닐까.
차갑고 각박한 도시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 감정 표현은 과분한 것이다.
불경기에 실적인 바닥이 나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상사의 압박을 받으며 줄 야근을 해오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의 짐은 엄청나다. 그들에게 집은 편안한 곳이 아니다. 업무 스트레스에 야근까지 한 상태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마신 술에 쩔어 들어오면 집에서는 바가지를 박박 긁는 아내에 말 안듣는 자녀들, 이들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장들의 모습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비춰진다.
영화 속 주인공은 금융회사의 매니저,
그 회사의 사장은 장인어른이다. 사랑하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아내의 남편을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는 장인어른의 눈에는 미소가 지어질 수가 없다. 무슨 일을 해도 못마땅하고,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의 아내의 눈에서 주인공은 결코 행복한 모습이 아니다. 함께 있는 장면들은 많지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단 하나도 없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던 그에게 큰 변화가 왔다.
아내와 함께 타고 가던 차가 사고가 난 것이다.
불행히도 자신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그의 아내는 사망했다.
한 순간에 자신의 아내가 죽게 된 주인공은, 오히려 무덤덤하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감각적인 상황에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그의 결혼생활이 결코 행복 하지 않았고, 삶의 한 과정이었기에, '그냥'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남들이 하기 때문에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것들을 많이 경험한다.
남들 다 대학가니까, 나도 대학 가야지
남들 다 졸업하니까, 나도 졸업 해야지.
남들 다 취업하니까, 나도 취업해야지.
남들 다 결혼하니까, 나도 결혼해야지.
이 기세라면 남들 다 죽으니까 나도 죽어야지. 할 기세다.
인생의 라이프사이클이 있지만, 결코 그 사이클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내가 그 사이클에 모든 것을 맞출 필요는 없다. 억지로 나의 퍼즐들을 그들의 틀에 맞추려다보면 홈이 맞지 않은 상황인데도 끼워 넣다가 나중에는 종잡을 수 없이 판을 다 뒤엎어야할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인생은 남들이 봤을 때는 잘나가는 금융가 매니저에, 좋은 집에, 아름다운 미녀를 아내로 둔 행복한 남자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남들에게 보이는 것뿐이지, 그가 직접 살아가고 있는 진실된 모습은 아니다.
아내가 죽고, 방황하던 그는 뭔가 큰 나사가 빠진 듯 살아가지만, 그것이 아내의 죽음이라고 하기에는 아내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인지 몰라 계속 방황한다. 그러던 중, 아내가 죽고 배가 고파 병원에서 자판기에서 M&M 초콜릿을 뽑아 먹으려다 그게 걸려버려, 자신의 이야기를 절절히 편지에 쓰던 중 아예 모르는 한 여자와 연락을 하게 된다.
결코 솔직하게 살아오던 그의 삶이 아니었던 탓에, 자판기 고장으로 클레임을 걸기 위해 적게 된 편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게 된다. 그렇게 후련하게 자신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니 한 편 시원한 느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던 상담사와 대화를 하고 싶어 달려간 그에게 상담원은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를 감싸주고 보살펴 준다.
그녀의 삶을 제대로 살펴보면 그렇게 행복하진 않다. 아기가 있는 미혼모이지만, 대마초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하나 밖에 없는 어린 아들은 담배를 피워대며,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이 찍혀서 정학 처분을 당하며 집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점점 깨달으며, 남들과 다르다는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는 충동적인 생활들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잘나가는 기업가
잘나가 보이는 금융사의 매니저이자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자
사회적인 활동을 하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한 여자
문제아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사장과 연애를 하는 한 상담원 여자
대마초를 피우는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며 성 정체성에 혼란이 오는 한 남자 아이
이들의 인생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힘들게 살아가지만, 묵묵히 버티며 살아가고,
남들을 속여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말을 하지도 못하며 살아가는
소극적이고 차가운 도시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
우리는 주인공처럼 누군가의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
'-열정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정문화][#93] 부산행 KTX가 단순 좀비물이 아닌 이유(스포일러 있음, 캐릭터 묘사) (0) | 2016.07.21 |
---|---|
내 마음대로 뮤직비디오 Halfways _ Black Twig (0) | 2016.07.06 |
[열정문화][#91]고집불통 할아버지의 아련한 러브스토리, 오베라는 남자 (0) | 2016.07.06 |
[열정문화][#90] 오금 지리는 영화, 작품성 높은 곡성(나홍진 감독, 2016) (0) | 2016.06.26 |
[열정문화][#89] 다음작이 기대되는 영화, 워크래프트 (0) | 2016.06.13 |